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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정숙  기자
한겨례 신문, 1994-09




가수들에 가려 있던 연주가들이 대중 앞에 얼굴을 드러내고 있다.

 

기타리스트 이병우 시는 최근 서울 동숭동에서 귀국 연주회를 가졌다. 현역으로 활동하다 불쑥 오스트리아로 떠난 그가 유학을 끝내고 와 가진 첫 독주회는 그의 오랜 동료 조동익 씨를 놀라게 했다. 찾아오는 사람이 그렇게 많을 줄은 몰랐다는 것이 베이스 연주자로, 편곡자로 국내 대중음악계에 탄탄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이 30대 음악인의 솔직한 이야기. 대중음악의 저변이 그만큼 확대됐음을, 음악 자체도 다양해졌음을 알 수 있다.

 

그가 첫 독집 음반 「조동익-동경」과 영화 [장미빛 인생]의 영화 음악 음반을 냈다. [장미빛 인생]의 노래 <아침을 맞으러>는 가수 김장훈 씨에게 맡겼지만, 8곡 가운데 연주곡과 노래가 꼭 반반인 독집의 노래는 자신이 불렀다. 그는 가수가 되려는 것인가.

 

뭔가 얘기하고 싶은 것이 남아 있어서 노래를 했을 뿐이라며 조동익 씨는 웃는다. <엄마와 성당에>, <노란 대문(정릉배밭골 70)> 등을 통해 그는 자신의 유년기 70년대를 돌아보고 싶었던 것이다. 정릉에 아직 배밭이 있고, 칠성이네 아버지가 거름을 져 나르던 밭이 있던 그 연대(<노란 대문>)를 향한 시선에는 순수에 대한 향수가 담겨 있다. 그리고 따뜻해서, 그보다 먼저 음악활동을 시작한 형 조동진 씨의 노래를 연상시킨다.

 

그런데 관심은 연주가 조동익에게 기운다.

연주곡은 워낙 해보고 싶었다. 86년부터 이병우와 함께 두 번 낸 <어떤날>은 노래집이었지만, 그 뒤 둘 다 연주에 몰두했다. 92년에는 김현철, 손진태, 함춘호랑 넷이서 야샤라는 그룹을 만들고 그 이름으로 연주음반을 만들었으나 빛은 보지 못했다. 그러나 그것은 찾아서 듣는 이들이 따로 있다는 점에서 살아있는 음반으로 남았다.

 

<동경>, <동쪽으로> 등 인상주의적 색채의 <조동익-동경> 연주곡에는 피아노의 김광민, 기타의 이병우 씨 등이 참여했다. 정원영(서울예대 교수, 실용음악과), 함춘호, 손진태 씨와 함께 한국 세션의 제 3세대를 이루는 이들이다. 어떤 점에서 이들은 행복하다. 조원익, 이호준 등 바로 이전 세대, 그들보다 앞선 이봉조 악단 시대의 연주가들과 달리 노래의 연주 부분에 귀기울이는 청중들, 그리고 연주음악 자체에 첫 관심을 갖는 애호가들을 지녔기 때문이다. 소리에 예민해진 청중을 의식한 프로듀서들의 인식도 많이 달라졌다. 조동익 독집도 그런 변화의 산물이다.

 

이 세대에게 고민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서양악기로 서양음악을 하다 보니 남의 밭에서 농사를 짓는 기분이 들 때도 있다고 조동익 씨는 털어놓는다. 그런 고민보다 더 절실한 것이 한때 있었다. 독학으로 시작한 자신의 연주가 제대로 되기나 하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었다. 이병우, 김광민, 한상원, 정원영 씨 등 대중음악 연주계의 이른바 해외유학파도 그런 상황이 만들어낸 셈이다. 이병우 씨는 빈 음악원에서, 김광민, 정원영, 한상원 씨는 미국 버클리 음악대학에서 수학하고 돌아왔다. 국내의 음악교육제도에는 이들의 갈증을 해소해 줄 곳이 없었다.

 

조동익 씨는 이 동시대 연주자들을 가리키며 우리 연주 기량도 많이 향상됐다고 흐뭇해 하지만, 막상 자신의 연주에 대해서는 아직은 시작 단계라고 엄격한 태도를 취한다. 소리를 좀더 연마하는 것, 곡을 쓴 이들의 음악을 정확히 표현해내는 것이 우선 과제라고 그는 자신을 다그치고 있다. 그리고 그 과제의 뒷줄에 항목 하나를 조심스럽게 배치한다. 그것은 한국적인 음악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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