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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수경 기자 (포토뮤직)

 

Pink Floyd David Gilmour 영향 받으며, 음악인 꿈 키워

11월 14일 저녁 7시. 논현동에 위치한 지하 2층 하나음악 연습실엔 하나, 둘 낯익은 얼굴들이 모여 들었다. 15일부터 학전 소극장에서 열린 장필순 콘서트 반주를 맡아준 김영석(D), 박용준(K), 고찬용(G), 권혁진(G), 조동익(B) 등 일명 조동익 밴드, 조동익 사단들이었다. 대충의 음을 잡아주고 나온 대부(?) 조동익은 청바지에 티셔츠, 청재킷을 걸쳐 입은 모습으로 많은 젊은이들 틈에서도 결코 남부럽지(?) 않아 보였다. 그만큼 뮤지션으로서 젊은 감각을 지녔기 때문이 아닐는지.

60년 서울 출생. 아버지는 영화감독을 하시던 조긍하 감독, 형은 노래하는 시인 조동진. 아버진 바이올린을 연주할 줄 아셨고 그에겐 어린 시절부터 늘 음악이 따라 다녔다. 자연스럽게라는 표현이 가장 적절할 만큼 그는 음악의 길로 접어들었다. 둘이나 되는 형이 모아둔 앨범을 듣고, 기타를 튕기며 스스로 터득한 것이 많았던 시절.

고등학교 때 그는 팝 뮤직계에 등장한 최초의 언더그라운드 그룹이자 초현실주의적이고 신비감마저 감도는 가사 때문에 최초의 영국 사이키델릭 밴드로 불린 Pink Floyd 음악에 심취하게 된다. 특히 Syd Barett 탈퇴 후 영입된 David Gilmour의 기타 플레이는 그를 매료 시키기에 충분했고, 막연했던 음악인으로서의 삶을 구체적으로 꿈꾸게 만들었다.

보통 한번씩은 거쳤을 법한 스쿨 밴드도 그와는 거리가 멀었다. 주로 형 어깨 너머로 음악을 배웠고,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은 실패를 거듭하며 전적으로 혼자만의 음악을 즐겼다. 그러던 중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형편상 대입을 포기한 그는 82년 최성원의 「우리 노래 전시회」에 연주와 노래로 참여하며 본격적으로 프로계에 입문하게 된다.

그가 밝히는 베이스 연주記 또한 흥미롭다. 85년 음악적 취향이 맞아 절친한 이병우와 어떤날이란 이름으로 앨범을 낼 당시, 이병우가 워낙 기타 연주를 잘 해서 본인은 다른 쪽으로 방향을 돌렸는데, 그때 택한 것이 바로 베이스였다고.

 베이스는 멜로디 악기라고도, 리듬 악기라고도 할 수 있죠. 저음이 매력적이구요. 주어진 곡의 맛을 최대한 살리려고 노력해요. 무척 추상적인 표현이겠지만 연주할 때 마음을 불어넣으려는 자세가 중요한데 이렇게 밖에 표현을 못하겠네요.그는 베이스 세션을 많이 한 편은 아니다. 주로 본인이 작곡, 편곡한 곡을 직접 연주해주는 정도랄까.

 

감동적인 가사, 자연스런 연주가 좋은 포크 추구

사실 조동익은 베이시스트, 작사/작곡자로보다는 편곡자로서 더 유명하다. 특히 편곡자로서 조동익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그 실력을 인정 받고 있는 중이다. 85년 가시나무가 수록된 하덕규 3집 앨범을 편곡하면서부터 현재까지 박학기, 김광석, 안치환, 장필순, 조규찬, 최성원, 한동준, The Classic, Toy 등의 앨범을 작업해 왔다.

제대로 공부하지 않은 게 마음에 걸리죠. 책 보는 걸 별로 안 좋아 했거든요. 제 스스로를 볼 때는 편곡을 잘 하는 것 같진 않아요. 그저 곡의 분위기와 맛을 내려고 최선을 다하는 것뿐입니다. 조동익은 이렇게 음악 활동을 해왔다. 자신이 직접 작사, 작곡, 편곡한 다른 가수들의 음반을 통해서만 그의 음악을 접할 수 있도록.

그런 그가 드디어 최근 독집 앨범을 내놓았다. 「憧憬」이란 타이틀에서 느낄 수 있듯이 그의 앨범에선 인간미가 물씬 풍겨 나온다. 정릉 배밭골에서 보낸 어린 시절에 대한 그리움과 돌아가신 어머님에 대한 추억을 고스란히 담아낸 것으로 노래 반, 연주 반의 형식을 띠고 있다. 「憧憬」엔 버클리 음대 출신의 재즈 피아니스트 김광민과 The Classic의 박용준이 건반을, 이병우가 기타를, 김영석이 드럼, 본인이 베이스를 맡아 안정된 연주를 들려주고 있다.

앨범 모두 석 장을 냈어요. 그 중 이병우랑 함께 한 「어떤날 1집」에 가장 애착이 가네요. 제가 여태껏 음악을 해오면서 병우랑 가졌던 시간이 가장 좋았거든요. 이번 독집 앨범은 그저 음악하는 사람으로서 자기만족적인 음반을 냈다고 보시면 돼요.

그는 내년쯤 함께 작업하면서 공공연히 조동익 밴드 공식 명칭이 아님을 밝힌다-라 불리는 박용준, 김영석, 함춘호, 권혁진, 고찬용 등과 연주 앨범을 낼 계획을 갖고 있다. 스튜디오 세션이나 편곡할 때 한 팀이 되곤 했던 이들과 가장 마음이 잘 맞아 계획한 일인데, 공연도 하고 싶다고.

음악인 조동익. 그가 추구하는 음악은 '포크'이다. 감동을 전하는 가사가 그렇고, 꾸미지 않고 자연스러운 연주가 좋아서. 진정으로 음악을 사랑하고 충분한 실력을 갖추었음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나서지 않고, 조용히 무던하게 자신의 길을 가는 그의 모습이 무척이나 미덥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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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정숙  기자
한겨례 신문, 1994-09




가수들에 가려 있던 연주가들이 대중 앞에 얼굴을 드러내고 있다.

 

기타리스트 이병우 시는 최근 서울 동숭동에서 귀국 연주회를 가졌다. 현역으로 활동하다 불쑥 오스트리아로 떠난 그가 유학을 끝내고 와 가진 첫 독주회는 그의 오랜 동료 조동익 씨를 놀라게 했다. 찾아오는 사람이 그렇게 많을 줄은 몰랐다는 것이 베이스 연주자로, 편곡자로 국내 대중음악계에 탄탄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이 30대 음악인의 솔직한 이야기. 대중음악의 저변이 그만큼 확대됐음을, 음악 자체도 다양해졌음을 알 수 있다.

 

그가 첫 독집 음반 「조동익-동경」과 영화 [장미빛 인생]의 영화 음악 음반을 냈다. [장미빛 인생]의 노래 <아침을 맞으러>는 가수 김장훈 씨에게 맡겼지만, 8곡 가운데 연주곡과 노래가 꼭 반반인 독집의 노래는 자신이 불렀다. 그는 가수가 되려는 것인가.

 

뭔가 얘기하고 싶은 것이 남아 있어서 노래를 했을 뿐이라며 조동익 씨는 웃는다. <엄마와 성당에>, <노란 대문(정릉배밭골 70)> 등을 통해 그는 자신의 유년기 70년대를 돌아보고 싶었던 것이다. 정릉에 아직 배밭이 있고, 칠성이네 아버지가 거름을 져 나르던 밭이 있던 그 연대(<노란 대문>)를 향한 시선에는 순수에 대한 향수가 담겨 있다. 그리고 따뜻해서, 그보다 먼저 음악활동을 시작한 형 조동진 씨의 노래를 연상시킨다.

 

그런데 관심은 연주가 조동익에게 기운다.

연주곡은 워낙 해보고 싶었다. 86년부터 이병우와 함께 두 번 낸 <어떤날>은 노래집이었지만, 그 뒤 둘 다 연주에 몰두했다. 92년에는 김현철, 손진태, 함춘호랑 넷이서 야샤라는 그룹을 만들고 그 이름으로 연주음반을 만들었으나 빛은 보지 못했다. 그러나 그것은 찾아서 듣는 이들이 따로 있다는 점에서 살아있는 음반으로 남았다.

 

<동경>, <동쪽으로> 등 인상주의적 색채의 <조동익-동경> 연주곡에는 피아노의 김광민, 기타의 이병우 씨 등이 참여했다. 정원영(서울예대 교수, 실용음악과), 함춘호, 손진태 씨와 함께 한국 세션의 제 3세대를 이루는 이들이다. 어떤 점에서 이들은 행복하다. 조원익, 이호준 등 바로 이전 세대, 그들보다 앞선 이봉조 악단 시대의 연주가들과 달리 노래의 연주 부분에 귀기울이는 청중들, 그리고 연주음악 자체에 첫 관심을 갖는 애호가들을 지녔기 때문이다. 소리에 예민해진 청중을 의식한 프로듀서들의 인식도 많이 달라졌다. 조동익 독집도 그런 변화의 산물이다.

 

이 세대에게 고민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서양악기로 서양음악을 하다 보니 남의 밭에서 농사를 짓는 기분이 들 때도 있다고 조동익 씨는 털어놓는다. 그런 고민보다 더 절실한 것이 한때 있었다. 독학으로 시작한 자신의 연주가 제대로 되기나 하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었다. 이병우, 김광민, 한상원, 정원영 씨 등 대중음악 연주계의 이른바 해외유학파도 그런 상황이 만들어낸 셈이다. 이병우 씨는 빈 음악원에서, 김광민, 정원영, 한상원 씨는 미국 버클리 음악대학에서 수학하고 돌아왔다. 국내의 음악교육제도에는 이들의 갈증을 해소해 줄 곳이 없었다.

 

조동익 씨는 이 동시대 연주자들을 가리키며 우리 연주 기량도 많이 향상됐다고 흐뭇해 하지만, 막상 자신의 연주에 대해서는 아직은 시작 단계라고 엄격한 태도를 취한다. 소리를 좀더 연마하는 것, 곡을 쓴 이들의 음악을 정확히 표현해내는 것이 우선 과제라고 그는 자신을 다그치고 있다. 그리고 그 과제의 뒷줄에 항목 하나를 조심스럽게 배치한다. 그것은 한국적인 음악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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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태혁(프리랜서)/사진: 김정일
GMV, 1994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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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MV

언제부터인지 우리 가요계에는 언더그라운드 가수라는 말이 나돌고 있다. 잘 알다시피 언더그라운드 가수란 방송 출연이나 매스컴의 도움 없이 주로 대학가나 소극장 등을 중심으로 인기에 연연하지 않고 자신들만이 가지고 있는 색깔 있는 음악 활동을 하는 가수들을 말한다.

그러나 국내 가요계 현실상 방송에서 잘 불러주지 않는 무명 가수들이 자신을 일컬어, 또는 음악계 관계자들이 듣기 좋게, 부르기 좋게 '언더그라운드 가수'라 부르고 있는 실정이다. 때문에 언더그라운드에서 음악 활동을 하다가도 조금만 인기가 있거나 방송에서 불러주기만 하면 조르르 달려가 오픈 가수가 되는 현상이 되풀이 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지만 모든 가수가 그런 것은 아니다. 진정으로 음악을 사랑하고, 인기 가수가 되는 것보다 음반 한 장에 최선을 다하고 음악을 사랑하는 팬들의 반응을 기다리는 가수들도 있다. 그 중의 한 사림이 노래하는 시인 조동진의 친동생인 조동익(35)이다.

작자, 작곡, 편곡은 물론 노래까지 한 가지의 소홀함도 없이 음악 생활을 해온 그는 이미 가요계에서는 재주꾼으로 통해왔다. 진정으로 음악을 사랑하고 충분한 실력을 갖추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대중에게 모습을 보이지 않았었다. 가끔 한 장씩 내는 음반과 자신이 직접 작사, 작곡하거나 편곡한 다른 가수들의 음반을 통해서만 그의 음악을 접할 수 있었던 것이 고작. 이처럼 쉽게 접할 수 없었던 만능 음악 재주꾼인 조동익이 노래 반 연주 반의 음반을 내놓았다.

"예전에 ‘어떤날’이라는 음반을 같이 내놓았던 이병우와 그동안 함께 노래했던 것을 정리해서 내놓은 음반이에요. 별로 내세울 것은 없지만 그나마 특이한 것이 있다면 이번 앨범에는 타이틀 곡이 없다는 것이죠. 음반을 내놓았다는 기쁨보다는 팬들에게서 어떤 반응이 올지 걱정이 먼저 앞서요. 성격적으로 사람 앞에 나서는 것을 싫어해서 전혀 PR도 못할 것 같아요. 그러나 음반을 어떤 식으로 홍보하느냐 보다는 어떤 내용의 곡들로 채웠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저 음악을 사랑하는 한 사람이 가지 만족적인 음반을 내놓았다고 생각해 주세요."

이 앨범에는 버클리 음대 출신의 재즈 피아노의 귀재 김광민, 이승환의 백 밴드팀인 ‘Always'의 세션을 하던 박용준, 기타의 이병우, 드럼의 김형석 등이 참여했다. 초호화급! 베이스는 자신이 직접 맡았다. 또 여덟 곡을 담고 있는 이번 음반은 자신이 전곡을 작사, 작곡, 편곡한 것은 물론 재킷 사진까지도 직접 찍었다.

솔로 앨범에 이어 동요, 동화 앨범도 내놓을 예정
"저의 음악에 관한 모든 것은 형님의 영향을 받은 것입니다. 음악에 대한 관심을 갖기 시작한 국민학교 때부터 당시로는 듣기 힘든 음악인 재즈 음악을 들을 수 있었고, 악기도 다양하게 만져볼 수 있었어요. 이 때부터 막연하나마 음악인으로서의 삶을 꿈꾸었던 것 같아요. 형님처럼 멋진 음악을 하면서 성공하고 싶었어요. 남들처럼 집안에서 심하게 반대를 하는 그런 일은 전혀 없었어요. 오히려 형처럼 음악을 해보고 싶다고 하니까 그 때부터 저한테 관심을 보이면서 이것저것 가르쳐 주었어요. 그렇다고 책을 본다거나 음악에 대해서 연구를 하지는 않았어요. 기본적으로 저는 책을 보는 것을 싫어하는 편이지요. 거의 형님을 졸졸 따라 다니면서 어깨 너머로 음악을 배웠고, 잘 모르는 부분은 계속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면서 스스로 터득한 부분이 많아요. 한마디로 말하면 기초가 튼튼하지 않은 상태에서 음악을 한 셈입니다."

사실 조동익은 가수보다는 작사, 작곡자, 아니 편곡자로서 더 유명하다. 특히 편곡자로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실력을 발휘하고 있다. 한때 언더그라운드 가수들 사이에는 조동익이 편곡을 해야만 히트를 한다는 소문이 나돌기도 했다. 하덕규의 3집을 편곡하기 시작하면서 음악 생활을 시작한 그는 이후에도 여행 스케치, 박학기, 이승환, 장필순, 최성원 조하문, 한도준 등의 음반에 작사, 작곡 또는 편곡자로 참여했다.

"저는 공부는 안 했지만 음악은 누구보다도 많이 들었어요. 덕분에 고집이 있어서인지는 몰라도 남의 음악을 베끼는 짓은 하지 않습니다. 좋아하는 사람의 음악적 영향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남의 것을 베끼는 것은 도둑질이라 생각합니다. 다만 음악적으로 감이 잘 안 떠오를 때는 남의 음악을 듣고 새로운 감을 떠올리곤 합니다."

음악적 지기인 이병우와는 친구의 소개로 만나 지금까지 음악 생활을 함께 하고 있다. 이들은 취향도 비슷하고 음악성도 비슷해 아직까지 함께 음악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앞으로 기회를 만들어 동요, 동화 앨범도 내놓을 생각이란다. "솔직히 말해서 노래는 자신도 없고 실력도 많이 딸리는 것 같아요. 아무래도 노래보다는 편곡에 더 관심이 있어요. 가수보다는 편곡자로서 남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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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동진



         1998년 여름 발매된, 영화음악 앨범 [Movie]를 위한 포스터.
          영화 "No. 3"의 영화음악을 중심으로 엮은 앨범으로, 조동익님의 세 번째 솔로작.
          포스터의 사진은 조동진님께서 찍어주신 것으로 알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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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만드는 사람들                 
독집 앨범 발표 앞둔 전천후 베이시스트 조동익        


소박한 음악, 수줍음 많은 성격, 말수가 적은 사람, 그러나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 것 같은 사람. 작사, 작곡, 편곡, 연주 등 다방면에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고 있는 조동익은 그렇게 조용히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취재: 이수정, 사진: 이재하
월간 <<뮤직 라이프>>, 1994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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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뮤직라이프


소박한 음악, 수줍음 많은 성격, 말수가 적은 사람. 작사, 작곡, 편곡, 연주 등 다방면에서 탁월한 능력을 발취하고 있는 조동익은 그렇게 조용히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1960년생. 이제 30대 중반에 접어든 나이. 3남 2녀 중 막내. 늘 음악과 함께 해서인지 나이보다 훨씬 어려보인다. 영화감독으로 이름을 떨쳤던 조긍하 씨가 그의 부친. 영화계에 진출하기 전에는 전국 사진 콘테스트에서 최고상인 대통령상을 수상한 경력이 있을 정도로 그 분야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분이다.


조동익에게는 또 하나의 꼬리표가 붙어다닌다. 가수 조동진의 동생이라는. 그러나 그는 싫지 않다. 오히려 그 꼬리표가 자랑스럽다. 형의 음악을 누구보다 좋아한다. "사람들은 제 얘기를 할 때 으레 조동진의 동생 조동익이라고 형 이름을 먼저 얘기하는데 전혀 개의치 않아요. 오히려 형님 덕을 많이 본 셈이죠."


조동익은 대부분의 뮤지션들이 그러했듯이 어려서부터 예술적인 분위기 속에서 성장했다. 집안에는 항상 음악이 끊이지 않고 흘렀다. 가곡을 즐겨 부르신 아버지는 직접 곡의 해설과 함께 클래식 소품까지 들려주시곤 했다. 게다가 나이 차이가 많은 형님까지.


조동익은 아버지의 영향으로 영화에 깊은 관심을 갖기도 했으나 동진 형으로부터 음악적 영향을 받아 미처 다른 걸 해 볼 겨를도 없이 자연스럽게 음악 쪽으로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중학교 2학년 때 처음 기타를 잡았다. 고교시절 또래 친구들과 어울려 손에 잡히는 건 모두 만지작거렸다. 이렇다할 만한 활동은 없었다. 다른 친구들이 모일 수 있는 장소만 제공했다.

1984년. 언더 그라운드 뮤지션들이 모여 만든 옴니버스 앨범 [우리 노래 전시회] 1집에 자작곡 <너무 아쉬워 하지마>로 참여했다. 최초의 음반 작업인 것이다.


이후 기타리스트 이병우와 함께 '어떤날'이라는 듀엣을 결성하여 2장의 앨범을 발표했고 얼마 전에는 함춘호, 손진태, 김현철 등과 함께 '야샤'라는 이름으로 팀을 만들어 연주 앨범을 완성하기도 했다.


조동익이 베이스를 처음 치기 시작한 건 '85년 '어떤날'을 결성하면서부터. 그 전까지는 기타를 쳤지만 이병우의 기타 실력이 워낙 탁월해 기타 연주로는 승산이 없을 것 같아 베이스로 전환했다고. "기타를 치는 게 아니고 그냥 만져요. 연주도 제대로 못하는데 어떻게 감히 기타에 대해 말하겠어요."


조동익은 현재 국내 최고의 베이시스트로 인정받고 있으면서도 정작 자신의 플레이나 베이스 기타의 매력에 대해서는 언급하기를 무척 쑥스러워 했다. 재즈 베이시스트 자코 페스토리우스의 뮤직 비디오를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는 그는 단지 그 소리가 좋고 다루는 게 재미있다고.

다양하고 광범위한 음악 세계를 펼치는 팻 메스니를 좋아한다. 퓨전 재즈에서는 느끼기 힘든 슬픔, 기쁨 등의 감정이 풍부하게 느껴진다고.조동익의 플레이는 그리 화려하지는 않지만 그만의 색깔이 있다는 것이 주위의 평이다. 처음 듣는 곡이라도 금방 조동익의 세션 곡임을 알 수 있을 만큼 독특하다.


지금까지 수많은 앨범의 세션, 편곡을 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앨범은 하덕규 2집 [가시나무]. 처음 하는 일이라 두려움이 무척 컸지만 며칠밤을 꼬박 새우며 열심히 임했고 결과도 만족스럽게 나타나 소중하게 기억된다.


"한창 전성기 대는 1년에 20~30 따블씩 미친듯이 일했어요. 국수 뽑아내듯이 뽑아낸 거죠."

발표되는 앨범에 비해 세션맨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이 우리의 현실. 더욱이 전문성이 강조돼야 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몇 안 되는 세션맨이 이것저것 닥치는대로 앨범에 참여하는 것이 그는 안타깝기만 하다.


주기적으로 '내가 지금 뭐하는 짓인가'라는 생각이 들면서 자신의 음악에 자신감이 없어질 때 그는 가장 견디기가 힘들다. 이제야말로 자신의 이야기를 할 때다.


지금까지 다른 사람들의 앨범에 곱게 때깔을 입혀온 조동익은 자신의 이름으로 된 독집 앨범 발표를 목전에 두고 있다. 원래는 이미 오래 전에 발표될 계획이었으나 다른 가수의 녹음 세션에 우선적으로 참여하다 보니 계속 지연되었다고.


독집 앨범은 전곡을 직접 작사, 작곡, 편곡했으며 절친한 동료 뮤지션들이 연주에 도움을 주었고 형 조동진이 디렉터로 참여했다. 결코 잘 부르는 노래는 아니지만 자신만의 색깔을 담은 그만의 이야기. 때문에 일단 발표에만 의의를 두고 있을 뿐 자신의 활동 방향에는 별로 달라지는 점이 없을 거라고 한다.


앨범을 발표한 이후에도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작품 활동에만 전념할 생각. 앞으로 자신의 독집 앨범을 비롯해 동요 앨범, 동화 형태의 앨범, 연주 앨범 등도 구상 중이다. 워낙 나서기를 싫어하는 성격 탓에 남 앞에 자신을 드러내는 일이 가장 힘들다는 그는 어렵게 어렵게 한마디 던진다. "살아있는 듯한 음악을 하고 싶다"고.


술을 좋아하고, 낚시를 좋아하고, 여행을 좋아한다는 그. 아버지의 영향이 뒤늦게 나타나는 것인지 최근에는 사진에 미쳤다는 그. 전천후 뮤지션 조동익의 소망은 의외였다. 더 늦기 전에 사진작가가 됐으면 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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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텝25시                                                                    
영화 음악가 조동익                                                      
-- 무심결에 음악이 왔다 --                                                   

글: 황혜림
씨네21, 통권 19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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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영화 음악가 조동익
(39). 사실 조동익이라는 이름을 조금이라도 알고 있다면 영화 음악가란 직함은 낯설다. 이미 86년에 '어떤날'이란 듀오로 데뷔했고, [동경]이란 솔로 음반도 낸 뮤지션으로서의 그를 빼 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기타리스 이병우와 함께 한 '어떤날’은 상업적으로 성공하진 않았지만 대중음악사 한켠에 독특한 음악을 남겼다. 동화같은 서정이 묻어나는  가사와 뉴 에이지, 포크풍의 세련된 연주로 일상을 읊어낸 '어떤날'의 음반은 지금까지도 꾸준히 팔리는 스테디셀러. 그 뿐인가. 조동익은 편곡자이자 베이스 연주자로도 잘 알려졌다. 최성원의 독집, 김현철, 이승환 등등 알 만한 음반들 다수의 표지에서 '베이스 조동익'을  어렵잖게 찾아 볼 수 있다.

돌이켜 보면 음악은 무심히 그의 삶 곡으로 흘러 들어왔다.  큰형은 오디오 매니아고, 포크의 대가인 작은형 조동진은 일찍부터 기타를 잡았다. 덕분에 그는 초등학교 때부터 형이 기타 치는  모습을 보고, 집안 가득한 팝송 LP를 들으며 자연스럽게  음악에 빠져들었다. 고등학교 때 재미 삼아  녹음한 테이프를 형 조동진과 집에 놀러왔던 들국화의 최성원이듣고 [우리 노래 전시회 1]에 참여시킨 게 뮤지션으로서의 첫발이었다. 오랜 시간 음악에 적을 둔 그가 영화음악과 연이 닿은 것은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다.  조동익의 영화음악 입문작은 94년 '장미빛 인생'. "영화음악은 영화에 깔리는 음악이고 틀에 얽매일 거란 걱정을 했는데 평소에 못해 본 음악을 할 수 있었어요. 히트해야 한다든가 대중들에게 쉽게 다가가야 한다는 걸 염두에 두고 작업해야 하는 부담에서 좀 자유로워요." '장미빛 인생'은 인물들의 심리선을 따르는 서정적인 피아노곡. 두 번째로 맡은 '넘버 3'는 깡패 영화에 배경도 도시라 전자음악으로 분위기를 냈다.

신인 티를  벗고 중견  영화 음악인으로 가는 여정에 놓인 세 번째 작품이 이영재 감독의 데뷔작 '내 마음의 풍금'이다.  시나리오와 영화는 차이가 있지만 일단 시나리오를 읽은 뒤 느낌에 기대작품을 고른다. 지난 해 11월경 받아본 ‘내 마음의 풍경’ 시나리오는 "뭔가 다르다는, 보기 드문 영화일 거라는" 느낌이었다.  시골 마을 학교를 무대로 한 총각 선생님과 소녀의 풋풋한 짝사랑을 담기 위해 빚어낸 음악은  현악과 피아노,  클래식과 어쿠스틱 기타 등 전자악기를 배제한 소리. 서정적인 선율이 감정의 높낮이를  섬세하게 따라간다. 홍연과 은희의 테마곡, 산리 마을  아이들의 합창 등 5곡 정도를 기본으로 해서 다양하게 변주했다. 극중 인물 사이를 이어주는 매개인 LP판의 선곡도 맡았다.

"음악 이전에영화가 있기 때문에 영화를 만드는  사람과 내가 영화를 해석한 게 다를 때가 있어요."  그 때문인지  가능하면 영화 촬영 현장에 나가보는데, ‘내 마음의 풍금’은 고창이라 멀어서 한번밖에 못 나갔다. 지금은 식구처럼 몸담고 있는 ‘하나뮤직’에서 데뷔하는 후배의 음반작업도 돕고 그 동안의 변화를 담은  개인 음반도 벼르고 있다.  다음 음악 행보가  '영화 음악가 조동익'일지 '뮤지션 조동익'일지는 모르는 일이지만. 그 폭과 깊이를  가늠하는 재미는 점점 늘어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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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FM "진양혜의 세시와 다섯시 사이"에서는 한동안 음악인들을 선정하여 세 곡씩 선곡을 들려주는 꼭지가 있었다. 1999년 7월 17일 2부의 테마는 "작곡가와 편곡자로서의 조동익". 이 날 선곡한 곡은 아래와 같다.


① 유희열 - 달빛의 노래 (music & words: 유희열, arr: 조동익)
제 4회 유재하 음악 경연대회 기념 음반에 수록된 곡으로, 조동익님이 편곡을 담당한 곡으로 소개되었다.

② 한동준 - 너를 사랑해 (music & words: 한동준, arr: 조동익)
한동준님의 두 번째 앨범에 담긴 곡. 조동익님이 편곡과